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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 자는 자들에 관하여

 

골로새서 3:16절 상 반절 말씀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풍성히 거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의 양식으로 또 내 마음에 진리로, 내 마음의 능력으로 준비되어 있지 아니하면, 슬픔과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죽은 자를 놓고 또는 죽음을 앞에 두고 세상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아야 될 중요한 두 가지 이유를 바울이 본문에서 이야기 합니다.

 

1. 죽은 것이 아니고 자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 처럼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죽는 것이 아니고, 잔다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놓고, 잔다는 하는 의미가 어디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13절을 보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다음에 14절 중간에 가서도,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 15절 끝에 가서도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라고 세번이나 나옵니다. 어떻게 성도의 죽음이 자는 것 일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간청에 그의 집을 찾아 갔을 때는 그의 딸은 숨을 거둔지가 오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울며, 촛불을 켜고, 꽃을 가져다 놓고 야단법석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주님이 들어가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어찌하여 소리 내어 크게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비웃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후에 예수님이 그 아이를 보고, “일어나라!” 하니까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성도의 죽음을 놓고,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하였는데 그 말속에는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냐 하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한다는 것을 그 말속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잔다 잔다 하니까 무의식 속에서 영원히 자는 것을 말하는 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거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런 큰 축복을 받게 된 근거가 있습니다.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데,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자 보세요. 예수님에 대해서는 죽었다고 표현합니다. 꼭 같은 절 안에서 성도의 죽음에 대해서는 잔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예수 안에서 라는 말을 성서 학자들은 원문의 뜻대로 예수를 통하여라고 번역을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통하여 가 중요한 키입니다. 예수는 죽었다, 우리는 잔다. 예수님은 언제 죽으셨나요?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그렇게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 잔인하고 무도한 십자가의 형틀에 달려 완전히 죽어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는 영적인 죽음을 당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무엇이 영적 죽음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영적인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우리가 당할 죽음을 완전히 뒤집어쓰고 완전히 영적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6시간 매달리셔서 완전히 피를 쏟으시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나를 위해서 당하셨습니다. 그것 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옥에서 당할 영원한 죽음까지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죽음이든, 육체의 죽음이든, 영원한 죽음이든 예수님은 모든 죽음을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완전히 다 체험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요! ,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예수는 완전히 죽음으로 우리는 부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절을 보면 바울의 위대한 승전가요 개선장군의 노래가 나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이것은 사망을 비웃는 말입니다. 사망이 우리를 이겼나요? 천만에요. 57절을 봅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죽음을 극복하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 우리가 죽음을 극복했다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다가 깨어날 사람입니다. 그래서 58절에 그럼으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도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며, 하나님 나라에 먼저 간 형제들을 만나는 그 날까지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것이 하나님의 자녑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2. 14절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데,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의 재림 하실 때 데리고 오는 그 시간까지 자는 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하고 있다가 예수 재림 때에 나타나느냐? 하는 말입니다. 성경 안에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이론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재세례파 같은 사람들은 아예 잔다고 이야기를 해 버렸습니다. 영혼이 다른 곳에 가지를 않고 깨끗한 상태로 자다가 재림 때에 부활한다고 말을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옥에 들어갔다가 이곳에서 천국도 가고 지옥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대기 한다고 그럴듯하게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소망 없는 자와 같이 슬퍼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굳게 다시 한번 확인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예수님과 함께 땅으로 오기 위하여 잠자는 것과 같은 상태 그리고 다시 부활 하여 주님과 함께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형제들이 먼저가든 내가 먼저 가든지 주님이 재림하기 전에 우리가 설혹 육체의 죽음을 죽을 지라도 그것은 잠자는데 지나지 아니하며 결국은 완전한 죽음을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이 우리를 결국 깨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음을 우리 마음 속에 꼭 간직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죽더라고 우리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낙원에서 복락을 누리는 아름다운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도 우리가 다시 한번 마음 속에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소망을 우리가 가지면, 우리 주변에 많은 부조리를 보고, 많은 모순을 보고, 어떤 때는 참을 수 없는 고통도 당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웃을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일어 날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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