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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위엣것을 보라! 본 문 : 골 3:1-4

담임목사 2022.09.04 08:07 조회 수 : 10

제 목 : 위엣것을 보라!   본 문 : 3:1-4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높은 뜻을 품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이기 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에 있어서는 더욱 분명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 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위를 보라고 했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한 회기를 시작 하면서 위의 것을 보고 사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 우리가 속한 곳이 위엣 것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민 오기를 결정하고 나서는 한국 보다 미국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나의 대부분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Johnson Oatman),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하고 노래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21편에서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121: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로 서로다했습니다. 그 곳이 바로 위로부터 온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의 일을 다 집어 치우고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기도만 하고 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은 삶의 초점을 저 높은 곳에 두고 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귀하고, 신령한 것들은 우리가 갈 곳이기 때문입니다.

 

2.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위를 올려다보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거기에 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주님은 생명이시고, 진리 되시고, 길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편안할 때는 굳이 위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 위를 보게 되느냐하면 혼자서는 힘에 부칠 때입니다. 그 때는 무신론자도 위를 올려다보게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말에 의하면 사탄도 병들면 위를 쳐다보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평상시에는 그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인생의 근본적인 길은 모두 저 높은 곳에 있다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어떤 청년이 어머니가 너무 고지식하리만큼 철저하게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고는 어머니가 무지해서 그렇다고 늘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전쟁이 일어나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전장으로 떠나려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십니다. “아들아, 네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거든 위를 보거라.” 아들은 그 말을 무심코 듣고는 흘려버렸습니다. 이 청년이 전쟁에 나갔다가 그만 적진에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살아남을 가능성도,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도 전무합니다. 길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 이 청년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오거든 위를 보라는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이 청년의 가슴에서 순간적으로 그 말씀이 얼마나 강렬하게 떠오르는지 그만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여러분, 그 짤막한 기도 한 마디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청년은 어머니의 그 고지식한 신앙의 모습을 보고는 무지하다고 비웃었지만 막상 그 환경에 처하고 보니까 진정 근본적인 길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그 때 위를 올려다보는 힘 때문에 여러 날 동안을 인내하고 기다렸다가 구조를 받았다고 합니다.

 

3. 이 생활이 없으면 사람은 저속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길들이기에 따라서 사람도 될 수 있고, 짐승도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관심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서 육의 사람이냐 영의 사람이냐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데 그 높은 곳은 언제나 우리와 동떨어진 저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곳의 일부분은 현재 지금 나의 마음속에 있고, 관심 속에 있고, 생활 속에 와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험악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이 현실의 삶에서 그 나라를 경험하고 인식하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동안 땅엣 것에 너무 지배를 받고 살게 되면 거기서 나타나는 생활의 열매는 저속하고 천박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골로새서 3:5-8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음란과 부정과 정욕과 탐심과 분노와 악의와 부끄러운 일들뿐입니다. 여러분, 수도원과 감옥의 차이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외형상의 모습은 감옥이나 수도원이나 똑같습니다. 세상과의 격리, 높은 담장, 엄격한 규율, 자유의 제약, 똑같은 복장, 공동생활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죄수는 자나 깨나 한숨과 원망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수도원의 담장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자나 깨나 밝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날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죄수가 변하여 성자가 되면 그 곳이 비록 감옥일지라도 수도원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성자가 타락하여 믿음을 저버리면 그 수도원은 갑자기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그렇게 살려고 하면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이 따릅니다. 그것은 수고가 따른다는 점입니다.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데는 거기에 반드시 수고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올라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트만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도중에서 자꾸만 탈락하는 이유도 거기에 이 같은 수고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내려가는 일은 모두 쉬운데 올라가는 것은 모두가 어렵습니다. 산도 내려갈 때는 쉬운데 올라갈 때는 힘이 듭니다. 돈도 벌기는 어려운데 쓰기는 아주 쉽습니다. 사람도 깨끗이 하기는 참 어려운데 더러워지기는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수도하기가 어렵지 타락하고, 더럽혀지고, 추해지기는 순식간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높은 곳을 올려다보는 생활에는 언제나 수고가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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