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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고린도전서 11절부터 9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제

 

성경에 나오는 교제라고 우리말로 번역한 말씀을 원문에서는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신앙의 지식수준이 높아진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원문 그대로 사용하여도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주로 “Fellowship”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 나오는 참으로 좋은 말씀이 당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그것은 사회가 군대 조직 같은 명령과 복종의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의 말씀으로 순종을 요구 하였고 일반 사회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제에 해당하는 코이노니아는 진정한 친목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교회의 참된 모습의 하나입니다.

 

1. 참된 교제는 참된 성도들이 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드리고 나서 다 같이 밥을 먹는 것을 우리는 친교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칫하면 친교의 진정한 의미를 손상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점심 식사가 준비 되었으니 식사하시면서 그리스도의 교제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그리스도 안에 교제는 누구랑 하여야 할까요? 오늘의 본문 말씀에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종합하여 딱 한마디로 말 한다면 진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 받음을 나누는 것이 교제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 생활의 아름다움 교제의 중요한 첫 출발은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교제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기독교인들이 모여 술을 주제로 삼지 않습니다. 정치문제를 주제로 삼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이슈에 문제를 삼아 토론 하면서 그것이 교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1) 하나님 경험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사를 주시어 믿음이 어떻게 견고하여 졌는가는 나누는 것입니다.

4)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견디는 믿음의 내용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 하는 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1) 우리를 불러 주신 확신이 생깁니다.

2) 우리 주와 더불어 사는 증거를 말하게 됩니다.

3)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이루어 가게 됩니다.

4) 이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들로 교제 할 수 있도록 하여 예수님의 지체로서 주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갖게 하십니다.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창기와 교제하면 똑같은 죄인 됩니다. 도둑놈과 교제하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도둑놈 됩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신령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가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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