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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누가복음 12장 13절-21절  “마음이 있는 곳”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자리하는 곳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에 따라 우리의 태도와 반응이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이라고 하고 다음과 깉은 실험을 합니다. 여러분의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점심을 먹기로하고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에 잘 먹으려고 식당을 예약했습니다. 같이 어디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전화가 걸려 옵니다. “미안해 오늘 약속을 취소 해야 할 것같아” 이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그 친구를 위하여 시간을 비워 두었는데 만나는 날 아침에 박살이 난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지 써 보세요 하니까 “어이없다!” “다시는 너랑은 약속 안한다” 걱정이 된다” 등 등입니다. 그런데 당일 아침에 일어 나 보니 몸이 찌뿌등하고 힘듭니다. 감기에 걸린 것 같고 밖에 나갈 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친구가 먼저 전화가 왔는데 “ 내용은 똑같습니다. “미안해 오늘 약속은 취소 해야 할 것 같아” 그러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대부분 “다행이다” 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나의 마음에 따라 태도와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예수님에게 와 서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신앙과 마음은 이렇게 태도에 의하여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부른다

예수님에게 나와 부탁을 한 이사람은 예수님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으로서는 정말 최고의 대접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무엇으로 부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술의 고백이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인격은 내가 주님을 어떻게 부르는가 입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물건을 나누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2.이 사람은 마음에 탐심이 가득하였습니다.. 

물건을 나누는 사람이라는 이말의 원래의 뜻은 중재자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격을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중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저 물건 정도나 나누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 탐심으로 가득차면 안되겠습니다. 탐심이라는 말의 원문의 뜻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나도 아직 풍족한데 거기에 더 욕심이 일어나서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많은 것들이 우리속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3.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부요 하지 못한 자

 탐심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형제들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자신에게 돌아 오는 물질에 탐심이 있다보니 형제의 의리가 다 달아아났습니다. 탐심은 가치의 우선 순위가 바뀌게 합니다. 탐심이 가득한 사람은 정말 있어야 할 것이 결핍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계의 파탄이 온 것입니다. 형제와 재산 재판이 붙었으니 얼마나 문제가 형제간에 쌓였을 것입니까? 물질 보다 귀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십시다.

 

이땅의 것으로 하나님께 쌓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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